올해는 한 번도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지방 출장 촬영도 없어서 집 밖에서 잠을 잔 적이 거의 없네요. 보리의 암 투병 때문에 매일 약을 먹이고 병원에 다녀야 해서 집을 비울 수가 없었어요. 간병을 위해서는 시기적으로 괜찮았던 것도 같습니다.
보리가 떠나고 얼마 후, 오랜만에 속초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예전에 음식 사진 촬영을 했던 업장이었어요. 이번에 메뉴 리뉴얼 겸 사진촬영을 다시 의뢰하셨습니다. 덕분에 바닷바람도 쐬고, 여행 기분을 내며 출장 촬영을 다녀왔습니다.

점심 먹고 서울에서 출발, 저녁 즈음 속초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썬라이즈 호텔. 호텔스닷컴에서 세금 포함 8만 원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레지던스 용도로 지어졌는지 세탁기, 인덕션, 싱크대, 대형 냉장고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어요.
비데 설치된 변기, 욕실 디자인 깔끔합니다. 샴푸, 바디워시 등의 어매니티는 있고, 1회 용품은 별도 구매해야 합니다. 오랜만의 여행(출장)이라 세면백을 깜박하고 안 챙겼어요. 칫솔과 치약, 면도기, 로션 모두 속초에서 구입했습니다.
전망은 관계없으니 조금 더 저렴한 시티뷰로 선택했는데, 바다가 보입니다. 오랜만의 동해바다 시원시원합니다. 객실 크기에 비해 발코니 공간이 넓었었어요.

짐을 풀고, 저녁밥 먹으러 갑니다. 속초관광수산시장에 도보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다음날 촬영하기로 한 업장은 휴무, 바로 옆에 있는 88순댓국에서 소머리국밥을 먹었어요. 1인 테이블이 없어서 혼자 온 다른 손님과 합석을 했습니다. 다음날 알게 된 사실인데 제가 촬영한 식당 사장님은 이 식당 사장님의 친동생이라고 하더군요.
등산복 차림의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이 순대국을 드시고 있네요. 함께 식사를 하게 된 것도 인연이니 말을 붙여봅니다.
“등산 오셨나 봐요?”
“예예.”
“근처에 괜찮은 산이 있나요?”
“혼자 오신 건가요?”
등 대화를 계속 시도합니다. 처음엔 말수가 적었던 그분은 점점 친근하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전남 광주에서 오셨고, 새벽 3시에 나와서 산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 3시에 내려왔다고 합니다. 매년 설악산에 오고, 보통 오징어순대를 먹는데 오랜만에 찾은 순대국집이다, 매년 2-3회 마라톤 풀코스 대회 참가를 하는데 요즘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참가 신청이 어렵다.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여행의 이런 순간을 좋아해요. 새로운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과 만나 삶의 작은 부분을 함께 했다는 기억. 이번에도 식당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오랜 시간 기억될 여행의 시간을 남겼습니다.

소화시킬 겸, 동네를 걸어봅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오래된 동네 사진관 스타일의 증명사진 전문점이 있네요. 이런 스튜디오는 이제 점점 더 보기 어려워지겠죠.
스마트폰 카메라 달랑 손에 쥐고, 처음 가보는 길을 걸어봅니다. 삼각대를 펴고 다리 야경을 찍는 진사님이 계시네요. 슬 더위가 가시는 시기. 바닷바람 시원하고,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빛망울 예쁘고, 가끔씩 들리는 대화 소리.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행의 기분입니다.
일렁이는 색깔이 예뻐서, 영상으로도 찍어봅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었는데 그간 보리 덕분에 집돌이를 오래 했어요. 앞으로도 이런저런 여건상 예전만큼 다니진 못할 것 같네요. 1박의 짧은 출장 겸 여행이지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잊고 있었는데 사진 편집하다가 발견한 보리. 저는 속초 호텔에서도 보리 영상을 보고 있었네요. 요즘에도 혼자 집에 있는 밤이면 보리 영상을 보곤 합니다. 떠난 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었는데 여전히 보고 싶고, 허전하고, 영상을 보면 너무 예쁘고, 그러네요.
지나고 생각해 보니 보리가 떠난 후 한동안 무기력증이 왔던 것 같아요. 기분은 항상 쳐져 있고, 기운도 없고. 왜 사나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글도 쓰기 싫어서 지난 두 달간은 포스팅이 몇 개 없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는데 점점 나아지긴 했어요.
10년 넘게 함께 살았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다는 건 힘든 일이네요. 슬픈 감정이 오랜 시간 지속되지는 않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피곤했습니다. 하는 것도 없는데 머릿속도 지치고, 몸도 힘들고. 시간이 지나면 더 나아지겠죠.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체크아웃 하고 사진 촬영할 식당에 갑니다. 장터 순대국, 8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이에요. 푸드 스타일리스트 실장님은 제가 섭외했고, 처음 만나는 날이었어요. 명함을 드리며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를 했죠. 근데 왠지 낯이 익더라구요. 한참 촬영 준비를 하고 있는데 푸드 실장님이 소리칩니다.
“감독님! 저희 거기서 봤잖아요!”
알고 보니 예전에 다른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촬영에서 따로 섭외되어 사진 작업을 적이 있는 분이었어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죠.
‘세상 좁다, 착하게 살자.’


이런 음식들을 촬영했습니다. 아바이순대, 순대국밥, 소머리국밥, 전골 등. 아침부터 오후까지 데이 촬영을 진행했어요.
대표님이 메뉴판과 사인물 디자인도 원하셔서 디자인 업체를 소개해 드렸고, 그쪽 대표님도 촬영일에 방문하셨습니다. 디자인 대표님도 너무 오랜만에 만났어요. 근황 이야기도 하고, 반가운 얼굴들을 봤던 촬영이었습니다.

식사시간, 오랜만이 이 순대국밥을 먹었어요. 이 근처의 여러 순대국을 먹어봤는데 저는 이 식당의 음식을 제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촬영한 업장이 아니었어도 한 곳을 고르라면 이 집을 선택할 거예요. 양, 맛, 친절함, 위생 모두 괜찮은 식당입니다.

촬영을 마쳤습니다. 장비를 차에 싣고, 닭강정 사러 왔어요. 중앙닭강정은 2년 정도 전에 촬영했던 곳입니다. 가게 앞 모니터에 촬영했던 영상과 사진이 재생중이네요. 이 업장도 제가 먹어봤던 속초 닭강정 중에 제일 맛있었던 곳인데 촬영을 하게되어 신나게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속초 시장에서 닭강정과 마른 오징어를 구입해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맥주 안주로 먹었어요. 요즘 오징어가 귀하긴 한가봅니다. 가장 작은 10마리 묶음도 5만원이더군요. 괜찮은 사이즈는 10만원이 넘어갔어요. 올해 첫 여행 겸 출장 촬영은 소머리국밥, 순대국밥, 닭강정, 마른오징어와 함께 했습니다. 작업한 사진들이 잘 활용되고, 언젠가 다시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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